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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22.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 본문

[♡ 자유와 평화 ♡]/가톨릭 基本敎理

22.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

자유인ebo 2011. 6. 8. 13:34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

 

 

 

1. 신앙 

◈ 신덕(信德) 즉, 신앙은 무엇인가?
신앙은 성령의 은혜로서, 하느님께서 밝히시고 교회에 맡기신 진리를 하느님의 진실하심과 더불어 확실히 믿는 덕이다.
 

  신앙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데 기초이며 근원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응답,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응답을 뜻한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로는 희망과 사랑과는 구별되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한 측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믿는 사람에게도 늘 의문이 따라 다닌다. 신앙은 진리를 찾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부분적인 해답일 따름이다. 신앙이 가르치는 내용만은 확실하게 믿을 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이 영원한 생명의 전부를 다 밝혀 주지는 못한다. 주님은 신앙으로 생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 신앙을 고백할 마음 자세를 갖도록 요구하신다. 이 의무를 그리스도는 매우 확실하게 하신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마태 10,33).

 

2. 희 망
 망덕(望德) 즉,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은 하느님께서 태워 주신 덕행으로서, 예수의 공덕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생을 바라고, 그 복을 얻기에 요긴한 모든 은총을 하느님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에 따라 굳이 바라는 덕이다.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이상이 아니다. 하늘 나라를 상속할 무수한 형제자매의 한 사람으로서 각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힘써야 한다(로마 8,29).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도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설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하느님의 성실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인간의 완성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마태 5,48). 그리고 이 완성은 개인에서 인류사회 전체의 진보와 발전이 포함된다(민족 16∼17).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현세의 생활을 장차 올 영생과 분리시켜서는 아니된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이 다가 왔으니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라고 외치면서 현세 생활을 떠나 기도와 집단 생활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현세 생활이 우리 마음을 더럽히므로 세상을 떠나 살아야 구원을 얻는 양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희망과 맞지 않는 생활태도라고 하겠다. 영생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행한 선업(善業)은 이 세상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영원한 나라를 건설해 간다. 없어질 세계는 악이 들끓는 세계, 피조물들의 죄로 일그러진 세계이다.
그리스도교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악한 수단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3. 사 랑
 애덕(愛德) 즉, 사랑은 무엇인가?
애덕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덕행으로서, 온전히 착하시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며, 또 하느님으로 인하여 이웃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덕이다.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핵심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어 우리 마음속에 당신 사랑을 부어 넣어 주신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내 직장의 동료들과 부하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장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 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 사랑의 계명은 모든 계명을 요약한 것으로,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고, 모든 사람에게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인류가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재촉한다(요한 17,13). 따라서 신자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활동해야 할 임무가 있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

 

 

4. 죄
 죄란 무엇인가?
죄란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요,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계약을 파괴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며 동시에 미움과 질투와 교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다.

 

 대죄(大罪)란 무엇인가?
대죄는 자유의지로 하느님과의 친교를 단절시키거나 하느님과의 소원한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소죄(小罪)는 무엇인가?
자신의 자유의지 없이 범하는 죄도 여기에 해당되며 가벼운 죄로서, 대죄와 달리 하느님과의 친교를 단절시키지는 않는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의 행위다. 죄는 하느님께 대한 인격적 침해요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다. 이 이유 때문에, 알고 자유를 가지고서 한 행동과 그렇지 못한 행동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본시 나쁜 행동도 무지나 자유가 없이 했을 때 죄가 되지 않을 수가 있다.


  죄는 대죄와 소죄로 나뉜다. 대죄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단절시키거나 하느님께로부터 소외된 상태이며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자격을 포기한다. 대죄는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나 국가에서 세운 법을 알고도 자유로이 범할 때 성립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했다면 그는 대죄를 범한 것이다. 대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사람은 '대죄의 상태'에 있을 수가 있다. 즉 하느님 사랑에 귀의하지 않고 그분께 성실을 바치지 않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대죄를 범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전부에게 얻어 주신(요한 17,16) 풍부한 새 생명에 대해서는 온전히 죽은 몸이다. 뉘우치도록 하느님이 먼저 그를 움직여 주시기 전에는, 생명에로 돌아서기 위해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한다.
소죄는 은총의 생명 및 하느님과의 친교를 전부 박탈하지 않는다. 인간의 나약성과 결함으로 일상 속에서 범하는 사소한 죄들이다. 소죄는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의 실수요, 주저함이요, 잘못이다. 중대한 본분을 가벼운 정도로 범했을 때도 소죄가 된다. 도둑질을 하되 사소한 물건을 훔친 경우이다. 중대한 잘못을 범하긴 했으나, 온전한 의식과 자유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소죄가 되기도 한다.

 

 

5. 하느님에 대한 계명: 1∼3 계명
(1) 제1계명: 하느님만을 공경함 
 제1계명이 명하는 것과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만을 모든 것 위에 공경하여 높이도록 명하며, 하느님께만 드릴 공경을 사람이나 대상에게 드리는 것을 금한다.

 

 하느님께만 드릴 공경을 사람이나 대상에게 드린다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온갖 미신을 숭상할 때 그렇게 되는 것으로서, 마귀와 잡신을 섬기거나 점이나 사주팔자를 보면서 길흉화복을 미리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가장 높은 주님으로 알아 최고의 공경을 바치고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하느님만을 예배할 의무를 지워준다. 하느님은 행복의 원천이고 사랑의 원천이며 우리 최후의 목적이므로, 우리의 모든 행동이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이외의 다른 신에 대한 믿음은 미신이며, 신앙인으로서 이런 행위를 한다면 배교와 불신의 행위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대신에 그 어느 것도 그분의 자리에 올려 놓을 수 없다.


  현대에 와서 명예, 재산, 스포츠, 건강, 권력, 학력과 같은 것들이 하느님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여 하느님을 잊고 산다면 이 모두가 우상이 될 것이다. 미신과 독성(瀆聖)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에 직접 상치되는 죄이다. 독성죄는 하느님 예배에 봉헌된 사람이나 사물을 함부로 다루는 행위이다. 중죄를 범한 상태에서 성체, 견진, 성품 및 혼배 등의 성사를 받는 행동은 특별히 중대한 독성죄가 된다.

 

 

(2) 제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음 
 제2계명이 명하는 것과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이름을 정성되이 부르되,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과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이며, 거짓 맹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과 저주하는 것을 금한다.

  

  둘째 계명은, 하느님의 이름을 공경하도록 명한다. 우리는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께 존경을 드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마땅히 그분에 대하여 헛된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위증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 다음에 거짓을 말하는 짓이다. 하느님께 그분의 이름으로 서약한 바를 실천하지 않는 일도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이다. 구세주께 빌어 타인에게 해를 주시도록 하는 것도 불경의 죄이다. 하느님을 비방하는 독성(瀆聖)은 특히 중대한 죄이다.
일부 정치가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국민을 속이는 행위, 일부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일, 하느님의 이름을 걸어 자신의 이기적 행위를 미화시키는 일 모두가 하느님의 이름을 파는 것으로서, 제2계명에 어긋난다 하겠다.

 

 

(3) 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냄 
 제3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동을 쉼으로써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가 구약의 안식일(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지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에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발현하셨으며, 또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 참된 의미로 교회가 세워진 날이기에 초대교회부터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게 된 것이다.

  

  셋째 계명은, 주일을 거룩히 지낼 것을 명한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미사에 참례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미사 참례할 대축일은 예수님의 성탄대축일과 성모승천대축일(8월 15일)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1월 1일)이다. 그날의 특색이 될 축제의 정신과 주님 안에서의 기쁨을 방해할 만한 노동을 삼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꼭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예배에 관한 이 계명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 계명의 본래 의도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며, 따라서 종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게 하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에게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일만 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더 나아가서 내 밑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또 우리 자신은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6.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사랑에는 순서가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다음으로 자신을 위한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12,31)고 명하셨다. 올바른 자기 사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이웃을 올바로 사랑하지 못한다. 각자 자기의 구원과 참다운 선을 염려하고, 추구해야 하며, 이것은 사람의 첫째가는 도리이다. 그 대신 무질서한 자기 사랑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인간 생활의 중심은 하느님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자기를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은 오만이며, 오만은 죄의 뿌리이다.


  이웃 사랑은 중요하며, 십계명 중의 나머지 일곱 계명이 바로 이것을 다루고 있다. 어느 면에서 이웃 사랑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 형제가 되며 그리스도와도 형제가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 올바른 자기 사랑 그리고 하느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이다.

 


7. 윤리덕 (倫理德)
   올바른 자기 사랑은 다음 몇 가지 덕행으로 지탱된다. 그 첫째는 겸손으로서 그리스도교 덕행 중에서 제일 특색있는 덕이다. 자기는 일개 피조물이요, 자기에게 선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하느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하찮은 자아를 뽐낼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함을 깨닫게 만드는 까닭이다. 겸손은 아무리 비상한 자질을 타고 났어도 모든 것이 하느님 선물임을 인정하고 감사드린다.


  인내도 매우 필요한 덕이다. 사람이 바라는 모든 희망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부활에 앞서 십자가가 있고, 하느님이 정해두신 때를 기다려야 하는 세상에서 자기를 올바로 사랑하자면 인내가 필요하다.


  절제, 혹은 자제심이 없으면 자기도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절도있는 사람은 당장의 만족을 요구하는 행동과, 우정과 희망을 깨뜨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기 보다는, 분별과 신앙의 빛이 가리키는 참 선을 추구한다. 그릇된 자기 사랑으로 눈 앞의 것을 갈망하는 방종은 자신을 파괴한다. 나약한 인간성을 지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로마 7,24) 위에 말한 덕행을 쌓을 수 있다. 덕행에 진보하려면 은총에 귀기울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