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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25.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 본문

[♡ 자유와 평화 ♡]/가톨릭 基本敎理

25.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

자유인ebo 2011. 6. 4. 13:46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

  

 

 1. 그리스도인의 첫째가는 계명


우리는 실제로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오직 하나의 길, 사랑의 길 뿐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루가 10,27).
위대한 사랑의 두 가지 계명은 서로 보완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1요한 4,21).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현세적 요구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최소한의 사랑, 즉 약간의 기도와 주일미사에 겨우 참여하고 대죄를 피하기는 하되 이웃 사랑의 실천이 냉냉하다면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깊은 내적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봉사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은 친척이나 친구나 친지들만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신자들의 완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인격적인 사랑과 이웃에 대한 형제로서의 사랑에 의해 이루어진다.

 

 

2. 평신도 사도직(평신도의 소명)
 

하느님은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르셨다. 즉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당신의 예언자요 사제이며 왕이 되도록 부르셨다. 이것을 우리는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가 처해 있는 곳에서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 신앙과 사랑으로 무장한 평신도는 자신이 받은 소명 안에서 죄악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이 세상을 새로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동시에 정의와 사랑에 기반을 둔 현세 질서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세례성사로 사도적 소명을 받은 각 신자는 자기의 생활로써 신앙을 선포해야 한다. 평신도 사도직은 '생활의 증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참된 사도는 말로써 그리스도를 전할 기회를 찾는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에로 인도하고, 신자들을 가르쳐 굳세게 하고, 더욱 열심히 살도록 격려한다"(평신도 6).


평신도 사도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영성 훈련과 신앙에 관한 교리교육과 사도직에 관련되는 학문과 기술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개개인이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준비할 수 있으나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단체도 있다. 많은 이들이 신심회, 자선단체, 사도직회, 혹은 제3회 등에 가입함으로써 사도직을 위한 교육에 도움을 받는다. 이런 단체를 통하여 평신도는 성직자와 보다 더 직접적이고 밀접히 협력하게 되고, 교회 일치와 공동체적 성격을 잘 조화시키면서, 교회가 사도적 목표를 향하는 데에 자신들의 기술과 경험을 바치게 된다.

 

 

3. 수도 소명
 

모든 사람은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좀더 훌륭한 삶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사람은 좀더 큰 자유 안에서 하느님께 접근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 안에 살고자 한다. 그래서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이들은 완덕에 대한 복음적 권유 즉 정결, 가난, 순명을 지키기로 맹세한다.


복음적 권유를 지키면서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려는 결의는, 인간적 판단과 세속의 원리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이 당연히 추구하는 여러 가지 자랑스러운 목표, 즉 혼인으로 이루는 신앙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가정, 재산의 소유, 정당한 자기 주장 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신을 비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상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필립 3,8) 그들은 온전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가난의 서원으로써 수도자는 개인재산이나 재산관리를 포기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를 본받고(2고린토 8,9), 세상 물건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피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가난하고 미소(微少)한 많은 형제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려고 한다.


독신자는, 인간의 성(性)이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지만 사랑은 오직 한 가지 형태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수도자는 순결로써 "하느님이 제정하였고, 내세에서 완전히 드러날 혼인, 즉 교회가 그리스도를 유일한 신랑으로서 차지하는 저 경탄스러운 혼인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환기시킨다"(수도생활의 쇄신과 적응에 관한 교령 12).


순명의 서원도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순명이 덕행이라고 보기 어려워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순명을 본받는 순명이 인간의 정신을 풍요케 한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순명은 비굴하거나 노예적인 순명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보내신 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굳은 의지로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좋으실 대로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로마 15,3)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순명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종으로서의 모습은 성숙한 순명이다.
수도자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사랑, 이해, 동정심, 진리를 타인들에게 보여야 한다. 수도생활은 교회 안에서 빛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 준다.

 

 

4. 관상 수도회
 

세계와 인류 전체를 위하여 의미있는 일들 중에서 기도, 순명, 극기, 고립, 침묵의 생활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교회는 언제나 '쇄신'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관상 수도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항상 뛰어난 역할을 감당하였다"고 교회는 주장한다.


현대인에게 심각한 위험과 유혹은 지나친 활동주의이다. 외적 행동만으로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떠나서는 아무 궁극적 희망도 가질 수 없다. 은수자의 생활과 관상 수도자의 숨은 생활은 특수한 부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