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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53 ). 삼성산(삼막사-삼성산-서울대) 07. 3. 14. 본문

[♡ 나의 발자취 ♡]/▶山行

53 ). 삼성산(삼막사-삼성산-서울대) 07. 3. 14.

자유인ebo 2007. 3. 22. 16:01

 

 

                        삼성산 480.9 m. (2007. 3. 14.)

위치 : 서울 관악, 구로, 경기 안양

코스 : 신림동- 삼성산성지- 호암산- 장군봉- 거북바위- 삼막사- 삼성산- 거북바위- 호수공원- 서울대.

         (산행구간 마다 걸리는 시간을 하고싶지만 아직은 잘 안된다. 총 산행시간은 약 6 시간 소요) 

 

<삼성산 개념도>

 

           삼성산은 금천현의 관아가 있는 지금의 서울시 구로구 시흥 2동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
           서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보통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
           (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삼성산(三聖山)」 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
           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
           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산중에는 산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삼성사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백사 이
           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
           와, 일제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 (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
           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 자료 : 한국관광공사 - 

 

 

그동안 여러 번 삼성산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기회를 기다렸는 데 마침 오늘 9 시에 근무가 끝이 났다.

 때는 이때다 하고 얼른 교통편을 확인하고 대충대충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신림동 삼성산 입구 버스정류장>

 

지하철 2호선 을 타고 신림역 3 번 출구로 나와서 151 번 버스을 타라고 하는 교통검색 정보가 있었

나 정류장 표시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5522(난) 번 난곡가는 초록색 버스를 탓다.

 

신림동 삼성산성지앞 정류장에 내려서 삼성산성지 성당에 잠시 들러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커피 자

에서 커피 한 잔빼 마시고 밖으로 나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

의 형을 받고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졌던 삼성산 성지로 향했다.

 

교회 전례력으로 사순시기인 때라 많은 천주교 신자분들이 묵상을 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밖히

신 고통을 되새기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나도 바쁠 것도

없는 지라 순교성 인들을 생각하면서 14 처를 돌고 조용히 성지를 빠져나와 삼성산으로 향했다.

 

 

 <삼성산 성지에서 바라본 호암산(민주동산)>

 

발길을 옮기기 전에 성지에서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산 정상이 보였다.

나는 삼성산 정상부 정도 되는 줄 알고 성지 아래 약수터에 물길르러 온 사람들에게 삼성산 정상까

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니 삼성산을 잘 모르는 듯 여기가 삼성산이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다.

아니 저기 보이는 정상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되물으니 약 30~4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느긋하게 성지를 뒤로 하고 봉우리로 향해 오르니 오름길에 약수터가

여러 곳이 있고  거치른 암벽에는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표시인듯 녹슬은 철조망이 길게 쳐졌으

며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행길에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호암산 정상에 국기봉>

 

계곡을 따라 산 안부 능선에 올라서니 긴급구조 위치표에 '민주동산'이라고 적혀있었고 조금더 가니

직한 마당이 있었으며 땅바닦이 맨들맨들하게 다져졌고 달아있는 것으로 봐서 많은 사람들이 오

는 곳임을 알 수가 있었다.

 

넓은 마당에서 좌측으로 조금 나가니 시흥동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었으며 전망하기 좋은 큼

직한 위가 있어고 바위에 올라서니 아래는 절벽이었고 그 아래 평화롭게 보이는 사찰이 보였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물어보니 '호압사'라고 했다.

 

호압사 아래는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아파트 뒤로 곧게 뻗은 도로를 쭉 따라서

바라보니 안얀방향으로 가는 호암터널이 보였다.

 

다시 돌아 넓은 마당이 있는 정상부에 도착하니 암봉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렁이고 있었다.

국기대를 지나 조금더 나가니 나무로 만든 4~5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와 기암들>

 

전망대에 올라서니 넓게 펼쳐진 시야는 가슴이 확 뚤리는 듯 가슴이 시원하다 내가 지나왔던 삼성산

성지가 바로 아래로 보이고 신림동일대와 여의도, 길게 누운 한강, 좌측으로 머리를 돌리니 시흥동

일대와 시흥동에서 올라오는 능선의 등산로가 꼬불꼬불 그길을 걷고싶은 충동마져 느끼게 한다.

 

우측으로 머리을 돌리니 가깝게는 삼성산 칼바위 능선이 코앞에 나타났고, 멀리는 관악산의 중후한

모습과 그 아래 서울대 건물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나 여기있소 하고 있다.

 

'아~ 정말 좋다'라고 감탄을 하니 옆에서 같이 조망하던 한 할아버지 등산객께서 말씀 하시기를 한

강을 가장 길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여기와'검단산'이라고 했다. 그러고 생각하니 검단산의 한강조

망도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난다.

 

멀리 바라보는 조망도 좋았지만 주변 산세도 아기자기, 솔숲과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전망대 주변에

는 희귀한 기암들이 산객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을 제공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주변에 쓰레기가 좀 많은 편이었고, 모 기도처에서 홍보용 팜프렛을 바위틈 사

여기저기 꽂아놓은 것이 눈에 뛰어서 좋은 산에 재를 뿌린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웠다.

 

 

 <헬기장>

 

호암산을 뒤로하고 장군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니 헬기장이 나왔고 헬기장 주변에는 약수터와 운

동기구들 그리고 넓은 공터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서 우측길로 �향을 잡아서 삼막사를 목표로 조금 걸어가니 독수리 처럼 생긴 바위가 등산길

중앙에 버티고 있었고 조망하기 좋은 바위도 나타났다.

 

개념도만 들고 홀로 산행하는 터라 돌아오는 등산객에게 삼막사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

어보았다 걷기 나름이지만 30~40 분 정도면 충분하단다.

 

 

  <장군봉아래 전망바위에서>

 

3~40 분이라는 데 가야할 곳을 바라보니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미 몸이 조금은 지쳐있는 탓일까...

멀리 관악산의 안테나를 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국기봉(442 봉)>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에는 타 산에 비해 특성이 있다면 여기저기 국기봉이 많다는 것이다.

그냥 국기봉 하면 어디를 말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오늘만 해도 3 번 째다.

호암산, 칼바위능선, 442 봉. 어쨌든 국기를 보면 나, 너 할거 없이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솟아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기봉 터치하고 두 팔 벌려 승리의 V 자를 표현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이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라고 하기는 하나 언뜻 봐서는 거북닮은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북 등처럼 생겨서 거북바위인지 내 눈의 한계가 나타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바위의 면적은 제법 크다 사방 20~30m는 되는 것 같고 어쨌던 여기서 잠시 쉬고 삼막사로 향했다.

 

 

 <삼성산 통신소로 가는 도로>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삼막사 방향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오다보니 먹을 것이라고는 사탕 몇 알을 주머니 속에 준비한 것이 전부여서 배가

제법 고파오고 아~ 먹을 것 어디 없나 살펴진다.

 

포장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반월암이라는 암자가 하나 나타났고 그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무언

가 보따리을 묶고 있다가 내가 내려가니까 다시 풀면서 막걸리 한 잔 하고 가란다.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먹고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거 얼마나 반가운가 '할머니 한잔

에 얼니까' 하니 2,000 원 이란다.

 

막걸리 색깔이 좀 찐해서 무슨 술이냐고 물으니 좁쌀 막걸리라고 했다.

안주는 마늘쫑 줄기에다 된장을 꾹 찍어 먹으라고 해서 한 잔 쭉 마시고 된장에 꾹 찍어 먹으니 술

맛이 아니라 이건 꿀맛이었다.

 

 

 <삼막사 입구>

 

반월암에서 약 3 분 정도 걸어가니 삼막사 입구가 나왔다.

삼막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으나 삼막사의 유명한 명물

남근녀근석이 보이지가 않았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 좌측 대리석 계단을 쭉 따라 올라갔다.

 

계단길 중간쯤 갔을 때 좌측 산길로 두 분의 등산객이 가고 있기에 어느쪽으로 가는지 물어보니 삼

성산 능선으로 해서 안양쪽으로 가는데 정상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한다.

 

나의 마지막 목적지는 삼성산 정상이니 그분들을 따라가기로 하고 그분들과 갔이 걸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막사에 처음면 꼭 보고가야 할 것이 있는데... 라고 운을 뜨웠다.

 

남근여근석 있는 곳이 바로 대리석 길을 따라가면 칠성각이 있고 칠성각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삼귀자( 三龜字 )>

 

삼막사에서 대리석 계단쪽으로 조금 걸어나가니 좌측 바위면에 글인지 그림인지 헷갈리는 것이 있

어 발길이 머문다.

 

옆 안내판을 보니 "조선말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852~1935)이 이곳 백련암지 에

서 은거할 당시에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 귀자를 새겨 놓았다"고 적혀 있다. 

 

  

 <칠성각으로 향하는 대리석 길>

 

이 길로 계속 가면 만나는 곳이 남녀근석이 있는 곳이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칠성각이 있다고만

해서 칠성각에는 별 관심이 없어 중간에서 옆 등산로로 따라 올라갔었다.

  

 

 <칠성각>

 

 

삼막사 스님 

 

                   글 /  松花 김윤자 

 


해는 붉게 익어 속찬 열매로
서산에 덩그러니 매달리고
하늘도 땅도 너그러이 눈감아
속세에 떠도는 허물
땅거미 내리어 덮으실 제

 

마디 마디 육신 꺾어
부처님 전 예불 올리는
삼막사 스님
애간장 녹아 흐르도록
자신을 태워 사르고 또 사르고.

 

승복 속 하얗게 비운 마른 가슴에
더 씻길 그 무엇 남았길래
무심히도 흐르는 번뇌의 강 저리 깊어서
이 밤 百拜로 건너시려나.

 

관악산 허리 긴 능선
성불의 너럭바위 이루시어
하늘 가까운 이곳
山頂에 오른 뭇세인들
발 끝에
묻혀온 俗塵 털어 주시길
이 밤 千拜로 비오시려나.

 

三界의 얽힌 죄업 한줌까지
올올이 풀어내시려
묏봉 피 서리게 토해내는
묏등 뼈 휘도록 깎아내는
저 통성 염불소리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남근석과 여근석>

 

신기하게도 두 성기석이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은 처음 본다.

모양도 흡사하고 특이한 것은 여근석의 중앙부에는 물이 고여있어 더욱더 실물감을 자아내게 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남근석의 귀두부분에 거의 직각에 가까운데도 동전이 떨어지지않고 붙어있다.

나도 동전을 붙여 보았지만 여지없이 떨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불심이 깊은 사람이 붙이면 붙는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인지는...?

 

어쨌던 남근석과 여근석 이 두 바위를 보지않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등산객들을 만나서 그분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엄청난 손해를 봤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삼성산 정상과 철탑>

 

남녀근석을 뒤로하고 다시 오르니 나의 최종 목적지인 삼성산 정상과 철탑이 나타났다.

능선은 소나무와 바위로 이루어 져 있었고 우뚝솟은 암봉에는 기암들이 즐비하고 바위를 오르고

내리는 재미 또한 산행의 맛을 듬뿍 느끼면서 산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삼성산 정상은 통제구역인지라 정상 꼭지점을 찍어보지 못해서 약간 서운함을 안고 돌아서야 했다.

 

 

 <거북바위 입구 이정표>

 

여기서 하산 코스를 어디로 잡느냐 잠시 생각하다가 가장 빠른길로 가기로 결정하고 서울대 방향으

로 택했다.

 

긴 계단길은 고무 로프를 깔아서 쿠션이 있어 다리의 충격을 줄여주었고 땅을 밟지않고 걷는지라

하늘공원을 연상하게 했다.

 

한참을 가다가 길 동무를 만났는데 그는 40대 초,중반정도 되어 보였는데 몸은 좀 불편한 상태였다.

다리를 좀 저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삼성산과 관악산을 일주일에 3~4 번 이상은 꼭 찾는다고 했다.

 

그에게서 삼성산, 관악산 등산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도 듣고 나누면서 하산길의 피로도 잊고

어느 호수공원에 도달하게 되었고 관악산공원 입구에 도착해서는 그분이 서울대앞 지하철 역까

지 승용차로 태워주어 편하게 왔다 그분이 이글을 보지는 않겠지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호수공원>

 

호수공원은 사진으로는 여러 번 보았으나 실물은 오늘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자그만 하면서 분위기가 있었고 시간이 있으면 좀더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고 싶었으나 저녁에 가

곳이 있고 이미 약속시간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 그냥 스쳐 지날 수 밖에 없었다.

 

하여간 오늘 산행은 홀로 산행으로서 자유로운 시간들이었고 동행자가 없어서 속도의 완급을 맞출

필요도 없는 편안한 산행이었다.

그러나 멋진 경관을 조망할 때는 옆에 누가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산에서 산을 오르다 산을 본다.

 

                               글 / 강지산


길이 끝나는곳에

네가 있어 난 좋았더라

네가 있는곳에

내가 갈수있고 나 살수있어

너무나 행복해 하노라


누군가 산맥의 기슭에 와서

흙한줌 집어 갔다고

산이 사라지는것 산에서 산을 오르다 산을본다

아니어서 

나는 너무 좋았더라


숲과 소리와 그늘있고

시향의 오솔길 있나니

이만하면 내 행복 모두 이루었나니

용맹으로 솟구치는 저

시 산맥 장엄한 골짜기에

한그루 청솔처럼 자라나

살고 지고 싶어라

 

 

 

                                                

 

                                                - 삼성산에서, 2007. 3. 14. 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