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비오의 쉼터

남한산성 성지(2006. 7. 30.) 본문

[♡ 자유와 평화 ♡]/한국천주교 聖地

남한산성 성지(2006. 7. 30.)

자유인ebo 2006. 8. 7. 23:53

남한산성(南漢山城 / 2006. 7. 30.)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6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성은 편리한 통과 수려한 경관으로 수도권 주민들로부터 주말등산 코스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산성 안으로 들어서면 산성마을 중앙에 로터리가 있고,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 자가용 주차가 용이하며, 서울과 경기일원에서 드나드는 좌석, 노선버스가 있어 쉽게 가벼운 차림으로 산성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도로 양편으로 깨끗하게 지어놓은 기념관이나 전시장들이 모두 한옥 기와집으로 지어져 있어서 옛날 이곳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아름운 우리 건축양식에 자부심마져 느끼며 평화롭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나 많은 방문객들이 산성을 찾기는 하지만 이들 중에, 오직 천주를 섬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이곳에서 처참하게 처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이는 얼마나 될까...?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산행길 곳곳에 얼룩진 순교의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오늘날 우리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순교자들이 피로 지켜온 신앙의 결실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순교자 현양비

▼ 순교자 명단 클릭 ↓                                           ▼ 순교정신을 기리며 클릭 ↓

  

 

    남한산성은 병자호란(丙子胡亂,1839년) 이후 처형 터가 있어 기해박해(己亥迫害,1839년)와 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 당시 광주(廣州) 일원, 양주(楊洲), 용인(龍仁), 이천(利川)에서 잡혀 온 교우들이 치명, 순교한 곳이다. 원래 남한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 문무왕(661-681년)이 쌓은 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로 그 후 몇 차례 축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간에 걸쳐 축성됐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약 8km에 달하고 높이는 7.3km 가량이다. 동서남북 4군데에 문루가 있고 역시 4방위에 각각 장대(將臺:장수가 명령, 지휘하던 곳)가 있었는데 현재는 수어 장대(守禦將臺) 만이 남아 있다. 또한 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장경사 하나 만 남아 있다.

 

 

▲동문 입구에 남한산성임을 알리고 있다.

 

   이곳의 첫 번째 애환은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한양이 위태롭게 되자 인조가 세자와 백관들을 대동하고 피난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인조는 이곳에서 40여 일을 수성하였지만, 모든 사정이 악화되자 결국 이듬해 1월 30일 백관과 군사들의 호곡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성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후 조선에서는 청나라와 굴욕의 맹약을 맺은 삼전도에 세워진 청나라 태종의 송덕비를 가리켜 '치욕의 비' 또는 '한(汗)의 비'라 불렀으니, 이것은 곧 '호국의 몸부림'이었다.

 

 

▲ 야외 성당

    

    한산성성지를 상징하는 대형 십자가와 돌제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성모의 밤(5월)과 순교자 현양대회(9월)를 열고, 순례자가 많은 경우 야외 미사터에서 미사 봉헌을 한다. 또한 십자가 길과 성모상이 모셔져 있어 순례자들이 자연의 상쾌함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형구돌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고, 박해 때마다  여러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치명터"가 되었다.

 

 

▲옥터

 

 

  로터리 주차장 옆 사진에서 보이는 식당 앞이 옛 옥터이다. 그 당시 옥은 네모진 가장자리에 허리춤 정도로 고랑을 판 다음에 짚이나 수수대 등으로 대충 지붕을 이었고, 소나무 기둥과 거적으로 벽을 만들었다 한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그대로 몰아치는 이러한 옥안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모진 고문과 매질로 살이 찢기거나 피멍이든 몸으로 마지막 기도를 드리면서 순교할 그날을 기다렸다 한다.

 

 

 

▲발굴 조사중인 행궁터

 

   남한산성의 행궁은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상궐과 하궐로 나눠 졌다. 규모는 상궐이 73칸 반, 하궐이 154칸이나 되는 아주 큰 행궁이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인조가 거처하기도 했으며, 이후 영조와 정조임금이 여주에 있는 효종의 능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이곳 행궁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렇게 규모도 크고 역사도 깊은 행궁이었지만 그 옛날의 건물은 하나도 없고 주춧돌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 발굴조사 결과 상궐 내행전과 행각건물 및 좌승당 일장각, 재덕당등 행궁 주변에 있던 부속건물 등이 일부 재건되었고 발굴조사도 계속 진행중이며, 현재 행궁터는 경기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어장대

 

 

남한산성의 유수가 군사를 다스리던 수어영의 높은 장대로,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지도층으로 이름이 있거나 양반인 경우에는 이곳에서 문초를 당한 후 순교자가 되거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성곽

 

 

▲ 서문

 

이곳 서문은 한양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수어장대에서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은

주로 이곳에 버려졌다고 한다.

 

 

▲ 포도청과 군뢰청의 순교터 (현제는 파출소가 있다.)

 

 현 중부파출소 부근에 옛 포도청이 있었고, 그 뒤로 군사들이 신자들을 고문하던 군뢰청(軍牢廳)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 남한산성 안의 가옥수가 1,700여 세대나 되었고, 광주 유수가 아주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만큼 포졸과 군사들의 수도 많았을 것이다. 신자들은 옥에서 끌려나와 이곳에서 갖가지 형벌과 문초를 받거나 장형, 백지사 등으로 순교하였다고 한다.

 

 

▲ 연무관

 

 남한산성은 군사적 요충지로 병자호란 때는 인조 임금이 피신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 연무관 앞에서는 언제나 군사들이 훈련을 하였고, 그 때마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무술 연마 대상으로 삼아 목검으로 찌르고, 매로 때리곤 하였다 한다. 그러다가 실신하면 옥으로 데려가고 죽으면 그대로 동문 옆의 수구문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 동문앞 천주교 순교성지를 알리는 간판

 

  "이곳은 서기 1791년 신해(辛亥), 1801년 신유(辛酉), 1839년 기해(己亥), 1866년 병인(丙寅) 네 차례에 걸쳐 한덕운, 김덕심, 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순교자 2-3백 명으로 추산) 순교한 곳임." 라 적혀있으며,  순교자들의 시신은 남한산성의 물이 나가던 수구문을 통해 버려졌다.

 

 

▲  성 밖에서 본 동문

 

 

 남한산성의 형장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한덕운(토마스)이 참수 당한 순교터이다. 이후 박해가 거듭되면서 체포되어 오는 신자 수가 많아지게 되자, 동문(좌익문) 밖 형장 대신에 주로 성내에서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한다.

 

 

▲ 동문

 

 

 

나의 작은 잔에도 (남한산성 동문에서) 

 

                            김영수 

 

슬픔으로 맑게 무너지다 

기도로 뜨거이 일어서는 남한산성 

여기 동문에서는 

물소리 풀향내 가득합니라 

알뜰히도 부서져 아득히 던져진 곳 

그렇다면 부서져야 

하늘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바람 밝게 흔들릴수록 

눈물 희게 빛나는 골짜기엔 

흰 구름들 팽팽히 걸려들고 

나의 작은 잔에도 

죽음 밝게 차오르고 있습니다 

수구문(水口門) 커다란 바위들에는 

위대한 약속 새겨져 있고 

바위들 적시며 흐르는 물에는 

영원에 이르는 아픔 보입니다 

정녕 나의 슬픔에도 

피 어린 기도 스밀 수 있을까요  

 

                              

 

동문 옆 수구

 

 

남한산성 내의 물이 나가는 수구문(水口門)은 성안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이 이곳 골짜기에 버려지면서 시구문(屍軀門)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 흔적은 골짜기의 물과 함께 흘러가 버렸지만, 촬영을 위해 어둑한 수구에 들어서니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 하다. 박해 시대 때는 순교자들의 시신이 수십 일씩 방치되면서 사람들이 꺼려했던 곳이다. 당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승들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며, 때로는 그 시신이 잠자는 듯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 남한산성 성당내부

 

 

▲ 성당 마당에 성모님상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 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게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남한산성 성지 찾아가는 길

  동문 진입로

 

    ① 천호대교 - 길동 - 황산삼거리 - 하남시 - 광지원 - 동문 - 중앙주차장
    ② 중부고속도로 경안 I.C - 광지원 - 동문 - 중앙주차장

  

남문 진입로

 

    ① 잠실 - 복정사거리 - 약진로 - 산성터널 - 산성로타리 - 중앙주차장


    ② 경부고속도로 양재 I.C - 헌릉로(헌인능) - 세곡동 사거리 - 약진로 - 산성터

        널 - 산성로타리- 중앙주차장


    ③ 중부고속도로 경안 I.C(광주) - 43번 도로(하남방면) - 308번 도로 - 남한산

        성 - 동문 - 산성로타리 - 중앙주차장


    ④ 지하철 8호선 - 잠실역 - 송파역 - 복정역 - 산성역(하차하여 9번 버스로

        환승) - 산성터널 - 산성로타리 - 중앙주차장

 

  

◈  버스 이용

 

    ① 9번 : 산성로타리 - 남문 - 산성역 - 성호시장 - 모란 - 분당

    ② 15-1번 : 광지원 중부면사무소 - 산성로타리(30분 배차)

 

  

전철 이용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내린 후 ①, ②번 출구로 나와 9번 버스를 타고 "로

    타리 주차장(종점)에서 하차 (약 30여분 소요)

 

  

셔틀버스 이용 소요시간

 

    은행동 36번 종점 버스 정류장(10시 출발) - 은행시장 건너편 시민약국 앞(1분) -병원 앞  LG주유소(3분) - 단대동 성당 건너편 전화국(5분) - 성남 우체국 앞 횡단보도(7분) -  성호시장 앞 버스정류장(10분) - 창대교회 맞은편 버스정류장(12분) - 하대주공 건너편 횡단보도(14분) - 성남동 현대 APT정문 (15분) - 모란 전철력(구 터미날 건너편)자전거 보관소 앞(16분) - 태평 전철역 4번출구(19분) - 교보빌딩(22분) - 성남 초등학교 건너편 하이마트(24분) - 신흥 주공APT정문 횡단보도(25분) - 산성 전철력 11번 출구(27분) - 성지성당 도착(40분)

 


 ( 문의 산성성당 사무실 :  031 - 749 - 8522~3 )

 

 

 

-  남한산성 聖地에서 2006. 7. 30. 자유인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