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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새며느리밥풀(수락산, 2007. 9. 12.) 본문

[♡ 나의 발자취 ♡]/▶풀꽃 나무꽃

새며느리밥풀(수락산, 2007. 9. 12.)

자유인ebo 2007. 9. 14. 16:59

 

새며느리밥풀(현삼과), 수락산, 2007. 9. 12.

[새며누리바풀] [새며느리바풀]

 

 

양지바른 산지에서 자란며, 50cm 정도 높이의 줄기에는 꼬불꼬불한 짧은 털이 있다.

잎은 피침형으로 마주나고 끝이 길게 뾰족하다.

꽃은 8~9에 자홍색 꽃이 줄기 끝에서 총상꽃차례로 달리고, 포는 달걀형으로 적자색이 돌고 가장자리에 긴 가시털 같은 톱니가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부간의 갈등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가끔 느낄 때도 있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며느리를 딸처럼 끔찍히들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고있다.

 

내가 어릴 적에 들어온 말이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이 되어야한다" . 이 말은 시집가는 며느리에게 친정집 부모가 딸에게 하는 말이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집안의 며느리로써 해야 할 일만 꿋꿋이 하라는 당부의 말이다. 시집살이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런 당부를 했을까?

 

이 새며느리밥풀에도 애절한 사연이 숨어있다. 사연을 들어보면 며느리의 고통, 이유없이 던지는 시어머니의 학대에도 참아야만 하고,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라는 당시 며느리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가 있으리라...

 

 

 

전해오는 사연은 이러하다. 옛날에는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이 배 고품이었다.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복으로 생각한 그 옛날, 딸 일곱을 둔 가난한 농가에서 큰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다행이 이웃 마을 부잣집에 시집을 가게 되어 나머지 딸들은 무척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시어머니의 구박은 시작되었다. 가난한 집안이라 혼수를 많이 마련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참으며 살아 왔으나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푸다가 밥이 잘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밥알을 입에 넣는 순간 지나가던 시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다짜고짜 ‘어른에게 올리지도 않고 네가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다니...’ 라면서 푸고 있던 주걱을 빼앗아 사정없이 며느리를 때렸다. 며느리는 먹은 것이 아니라 밥이 잘 익었는지 보려고 했다며 변명하니 시어머니에게 대꾸 까지 한다며 더욱더 매질해 밖으로 내쫓았다.

 

어쩔 수 없이 대문 밖으로 쫓겨나 갈 곳 없는 며느리는 울면서 발길을 옮긴 곳이 친정집이 보이는 산언덕 이었다. 출가외인이라 친정집을 바라보면서도 갈 수도 없는 몸. 시집갈 때는 부잣집에 시집간다고 동생들이 그토록 부러워했었는데 지금은 쫓겨난 신세라니. 하면서 하염없이 울다가 지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후일 지나가는 길손이 시신을 발견 이를 불쌍히 여겨 그 자리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그 자리에서 핀 꽃이 억울한 누명을 변명이라도 하듯 입에 밥알을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그때부터 며느리밥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며느리밥풀 꽃
                          槿岩/유응교

 

욕심이 하늘같고
심술이 놀부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한 저에게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했으면
이렇게 되진 안했을 거예요

 

왜 사람들은 그토록
욕심이 많고 인색할까요.
죽어라 일을 시켜놓고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꼭 거리로 뛰쳐나와
붉은 띠 두르고 외쳐야하나요?

 

그토록 먹고 싶은
하얀 쌀밥 한 그릇
마음 놓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려 이승을 하직한
제 슬픈 과거를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고 사랑해 준다니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지요.
언제나 그 사랑 잃지 마셔요. 아셨죠?

 

- 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