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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진천 배티성지(2007. 5. 20.) 본문

[♡ 자유와 평화 ♡]/한국천주교 聖地

진천 배티성지(2007. 5. 20.)

자유인ebo 2007. 6. 4. 01:09

 

진천 배티성지(2007. 5. 20.) 

 

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는 배티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경기도 안성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산골입니다. 배티성지는 예전에 동네 어귀에 골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 라 는 말이 생겨 다시 순 우리말로 배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이곳으로 교난을 피해 교우들이 몰려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교우들이 은거하였음에는 틀림없고 배티만큼 치명자의 묘소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곳도 많지 않습니다. 

 

 

   

 

순교의 땅

 교회사의 기록에 진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난 것은 1813년 경입니다. 이때 충남의 홍주 덕머리출신인 원(元) 베드로 형제가 박해를 피해 진천 '질마로'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배티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그 후 1830년 무렵으로 추정될 수 있습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가 거듭되면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신자들의 은신처가 되어 골짜기마다 교우촌이 늘어갔습니다.
  

 

 

 

 

최양업 신부와 배티 교우촌

 

 

  최양업(1821-1861) 신부는 한국인으로서 두번째 사제입니다. 그는 1836년 모방 나 신부에 의해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 유학을 떠나 서구사상을 처음으로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입니다.

 

 그는 1849년 상해에서 강남교구 마레스카 주교님께 신품성사를 받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후 고국을 떠난 지 13년만인 1849년 12월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입국한 최 신부는 용인 학덕골과 진천 동골에 살던 동생들을 찾아본 후 즉시 신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위대한 목자요 백색 순교자입니다. 1861년 선종하기까지 12년동안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순회하며 목자없는 양처럼 지치고 방황하는 신자들을 찾아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과로로 죽은" 착한 목자입니다.

 

 

  

 

 

배티 교우촌

 1866년 병인박해 전 배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우촌은 삼박골, 정삼이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통점, 동골, 새울, 은골, 불무골, 모니, 소골, 지구머리, 지장골, 굴티 등 10여 군데가 넘습니다.곳에 모여든 신자들은 주로 충청도 지역교회의 중심지가 된 내포지방 출신 신자들이었고 일부경기도와 충주 출신이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순교자 55여명(교회역사에 기록진천 출신 순교자 29명과 배티 일대에 산재해 있는 무명 순교자 묘 26기)을 탄생시키고 일시적으로 와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그친 1870년 무렵부터 다시 이곳에 모여 복음의 새 터전을 닦아 나갔습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한국의 까따꼼바이며, 스스로 찾아온 복음의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간 신앙현장이며, 수많은 혈색 순교자와 백색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의 땅입니다.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

 

모든 성인들의 덕행으로 찬미 받으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당신은 일찍이 성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여 그 표양을 본받게 하셨나이다.

박해의 상황에서 주를 위해 모든 생애를 바치신 착한 목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공로에 의지하여 청하오니, 저희로 하여금 그 가르친 바를 따르며, 더욱 신앙에 정진하게 하소서.

또한 최양업 신부의 공로로 저희를 환난 중에 보호하시며, 저희가 드리는 기도를 들어 허락하심으로써 당신 권능을 드러내시고, 저희가 소망하는 대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복자와 성인들 반열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최양업 신부 사향가

류한영(베드로) 신부 / 배티 성지 담임

 

소위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라고 일컬어지는 것 중에서 현재 친저성이 인정되는 가사는 네 가지, 즉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사향가>이다. 이중 가장 많이 보급되고 애송되었던 가사는 <사향가>이며 필사되어 온 이본(異本)들도 다양하다. 이 중 <사향가>의 친저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또한 다양한 <사향가>의 이본들 중 어느 것이 원본의 모습에 가깝게 보존되어 왔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서정수 교수는 언어학적 분석에 따라 원문에 가까운 <사향가>를 복원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정본을 중심으로 사향가를 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본다. 서정수 교수는 <사향가>를 6장으로 나누어 정리했는데, 우리도 그 가다듬기에 따라 가사를 살펴보려 한다.

 

 

 

 

1. 들머리 : 본향은 천당

 

"본향은 어디" 

(1) 어화 벗님네야1)   (2) 우리본향 찾아가세   (3) 동서남북 사해팔방    (4) 어느곳이 본향인고 

(5) 복지로 가자하니   (6) 모세성인 못들었고   (7) 지당으로 가자하니    (8) 아담원조 내쳤구나

 해마다 명절이 되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찾아 집을 나선다. 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가 자기가 태어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동서남북 사해팔방"을 다 다녀도 인간은 끊임없이 고향을 찾고 그리워한다. 참된 고향을 발견하지 못해서 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참된 자리, 참된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신명초행>의 "사람의 종향" 항목에서는 "사람이 향하는 곳은 사람을 내신 본의 자리"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래 자리는 세속의 쾌락과 영화가 아니라, 하느님 자리 즉 하느님이 인간의 본성 안에 심어 주신 고유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창조하셨기 때문에(창세 1, 26),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비록 인간이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하더라도 그 마음 안에는 끊임없이 우러나오는 무언의 부르짖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않는다. 구약의 모세가 에집트를 탈출하여 40년간 광야를 헤매는 여정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을 상징한 것이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에 들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선종한 모세(민수 20, 12 ; 신명 34, 4)는 구세사 안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시킨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계명 대신 지상의 탐스러운 열매들을 추구하는데(창세 3, 6), 이것은 본래의 고향을 찾지 않고 지상의 복지를 찾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낙원에 들지 못하고 지상에서 방황하고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되어 있다. 각자의 영혼 속에 각인된 하느님의 모습이 우리들이 찾아가야 할 고향이다.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띠노는 <고백록> 1권 1장에서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습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역시 이런 고백을 할 것이다. "우리는 크옵신 당신의 성화 속에 안식하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은 아무런 선도 아쉽지 아니한 지선, 항상 고요하시니 고요함이 바로 당신이니이다"(13권 38장).

 

 

 “덧없는 이 세상” 

(9) 부귀영화 얻었던들   (10) 몇해까지 즐기오며   (11) 빈궁재화(마음에) 걸리인들2)   

(12) 몇해까지 근심하리   (13) 이렇듯한 풍진세계    (14) 안거할곳 아니로다   

(15) 인간영복 다얻어도      (16) 죽어지면 헛것이오3)         (17) 세상고난 다받아도             (18) 죽어지면 없으리라.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세상의 덧없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귀 영화와 빈곤 근심, 인간의 영화로움과 세상의 고난 모두가 사라지는 것이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향락에 몸을 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그것 또한 헛된 일이었다”(전도서 2, 1)고 한다. “날마다 낮에는 뼈아프게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죄어 걱정해 보지만 이 또한 헛된 일이다”(2, 23).

 

이러한 세상의 덧없음에 인간은 두 가지 삶의 자세를 가진다. 하나는 허무주의요 다른 하나는 쾌락주의다. 전자는 세상에 태어난 고통과 비참함만을 보고 자신을 허물어뜨리며 물거품으로 만든다. 후자는 어차피 짧은 세상을 사는 동안이나 실컷 즐기고 영화를 누리려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삶의 태도는 한 쪽면만을 보기에 극단을 향하여 서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 허무와 쾌락은 이웃하며 서로의 담을 넘어들며 혼란스러움을 더하게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인생의 길이 요청된다.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내가 보기에 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시는 것이다”(전도서 2, 24).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섭리를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영화와 빈궁은 사라지나 하느님의 섭리와 업적은 영원히 남는다. 하느님으로 비롯되지 않는 삶은 허무의 나락으로 사라지지만, 하느님을 토대로 지은 이승의 삶은 영원에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초행}의 “영원” 항목에 “세상에 있음은 덧덧함이 아니오. 이 잠간 생명을 지난 후에 영원 생명이 올 것이오”라고 말한다. 또한 “이 잠시를 주심은 영원을 위함이니……세상의 잠간 부귀와 일락을 탐하다가” 영원한 괴로움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사후묵상}의 “사후” 항목(1면)에는 “사람이 세상에 나서 이 헛되고 잠간 사는 세월에도 덕을 닦아 임종을 예비”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장자는 지락(至樂)편에서 ‘지극한 즐거움’에 대해 논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귀와 장수와 명예를 좋아하고, 빈곤과 요절과 치욕을 싫어한다. 즐거움을 찾고 괴로움을 피하는 이 행위(行爲)는 어리석은 일이다. 참된 즐거움은 "지락무락(至樂無樂) 지예무예(至譽無譽)"에 있다고 한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불명예가 있다. 즐거움을 찾지 않고 괴로움을 피하지 않는 무위(無爲)는 지극한 즐거움에 이른다. 무한한 즐거움은 즐거움이 있으면서도 즐거움이 없는 것처럼, 괴로움이 있으면서도 괴로움이 없는 것처럼 사는 데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2고린 6, 10). 세속의 복락이 지극한 즐거움을 주지도 않고, 세상의 고난이 지극한 즐거움을 영영 빼앗지도 못한다. 참된 즐거움은 기쁨과 고통의 행위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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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정수 교수는 김덕민본을 참조하지 않았으므로 각주에서 그 차이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김덕민 본에는 "어화 우리"라고 되어있다.
2) 김덕민 본에는 ‘만타한들’로 되어 있다. 서정수 교정본에서는 ‘걸린들’이라고 하였으나, 본  분 형태에 더 가깝게 하기 위해 ‘걸리인들’로 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3) 김덕민 본에는 ‘죽어지면 고만이라’고 되어 있다.

 

                                        회보 <배티 성지> 제2호 : 2000년 2월 15일 발행; 제3호 3월 15일

 

이상 최양업 신부 사향가의 일부, 더 보려면 배티 홈 양업연구소 클릭=> http://www.baith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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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 성지 찾아가는 길

  

 1. 경부고속도로 안성 나들목에서 우회전 (안성방향)  =>  10 Km (중앙대 입구지나 우회전, 고가로 올라가지 말고 우측으로 직진) => 안성시내 진입 (한경대 4거리 직진 후 바로 삼거리에서 우회전)  =>  사거리에서 직진(장호원 방향)  =>  안성시민회관 지나 400m 지점 신호등에서 우회전 (표지판에 마둔 저수지·중앙CC) => 30m => 다리 통과 즉시 좌회전 => 313번 도로 따라 직진 (4Km)  => 마둔 저지 =>(4Km)  =>  석남사 입구 =>  오르막 길 =>  (3Km) =>  정상 중앙 CC 입구 통과 =>  내리막 길 1.5Km 지점 우측  => 배티성지

 

2. 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에서 좌회전 => 성환 백곡 방향 => 백곡 저수지 지나 => 백곡 우체국 지나서1.5Km 지점에서 우회전 (배티성지 표지판 확인) => 안성, 중앙CC 방향으로 직진6.8Km => 배티성지 (좌측 언덕)

 

3. 대중교통 이용

(1). 안성 => 석남사 (시내버스), 석남사 입구에서 하차 => 도보 약 4Km (높은 재를 넘어야 함)
(2). 진천 => 양백리 (시내버스), 양백리 입구에서 하차 => 도보 약 2Km

 

4. 배티성지 => 사무실 : (043) 553-5710, 사제관 : 553-0691  PAX : (043) 553-0690   *

  

 

              

 

 

          날마다 눈 씻어 (배티에서) 

 

                                   글 : 김 영 수

 

 

          바람들이 헤매다 닿아
          눈물 왈칵 쏟아내는 골짜기엔
          죽어서 살아 있는 음향 가득합니다
          잠을 자지 않는 숲들
          고요해서 그윽이 기도가 되고
          흔들려서 뜨거이 꿈을 낳는 숲들
          나는 언제 죽음에 닿으며
          황홀히 살아날까요
          날마다 눈 씻어 순간을 건지며
          가난한 이웃 하나로 부활하여
          날마다 새 부두에서 떠나볼까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전히 하늘 건너는 사람들 바라보며
          눈물 속에서 눈을 떠 볼까요
          아득히 투명한 슬픔에서는
          순간이 영원을 비추는 것입니까

 

                                       

 

-  배티성지에서...  2007. 5. 20. 자유인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