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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대산(상원사, 월정사)

자유인ebo 2006. 6. 10. 12:10

 

오대산(상원사, 월정사)

五臺山(上院寺, 月精寺) / 2006. 6. 9.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계곡가에 임금님이 옷을 걸었던 곳이라는 관대걸이 현판이 있다. 즉, 세조가 목욕을 하기 위해

어의를 걸어두었다는 곳이다. 말년에 세조가 온몸에 종기로 고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세조가 기도로 병을 고쳐 보고자 이곳 상원사로 향하던 중 하도 물이 맑고 시원해 바로 이곳에서

 몸을 씻었다. 마침 지나가던 동승에게 몸을 씻겨줄 것을 부탁하고 "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

말하지 마라." 고 전한다. 이에 동자승은 되레 " 대왕이야 말로 문수보살을 보았다 말하지 말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단다. 이후 세조의 병은 깨끗이 나았고, 세조는 이를 기려 자신이 보았던

동자승의 얼굴을 목조상으로 만들어 상원사에 모셨다고 한다.

 

 

 

 

 

 

국보 221호인 상원사 대웅전에는 문수동자 좌상이있다 .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문수보살을 모신

절은 상원사가 유일하단다. 따라서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가 바로 상원사라고 한다.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서 예불을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해서, 이상한 생각이 든 세조는 즉시 병사를 풀어

 법당을 뒤지게 했고, 그 결과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 있던 자객 셋을 발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객의 칼에 의해 세조 목숨이 위태로웠음이 분명했다. 세조는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찾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조는 그 고양이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차선책으로 논 5백 섬지기를 절에 내리면서 해마다

고양이를 위해 제사 지내도록 명령했다. 이 때부터 절에는 묘전(猫田 : 고양이 논), 묘답(猫畓)

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절에 바치는 쌀을 ‘고양이를 위한 쌀’이라는 뜻에서 ‘고양미’로 불렀다. 

          그 후 ‘고양미’가 ‘공양미’로 발음이 변했고, 상원사 청량선원 입구 계단 좌우에 있는

                               고양이 석상은 그 사건을 기린 조각이라고 한다.

 

 

 

 

 

 

 

 

맑디 맑은 오대산 계곡의 시원한 계곡물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상원사에서 조금 내려와 오대산 월정사를 찾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창건 유래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

()》에 인용한 《대산본기()》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의 방()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자료 : 네이버백과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가 있었고, 1464년(세조 10)에 말사인

 상원사()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보관되어 있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월정사. 국보 제48호. 고려시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

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서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

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오대산에서 만난 야생화들...

사진클릭하면 더큰 이미지 볼수있음.

     

[미나리아제비]                   [불두화]               [졸방제비꽃]                [졸방제비꽃]

 

     

   [물참대]                 [꽃황새냉이]                 [개다래]                  [나도냉이]

 

 

 -  2006년 6월 9일. eb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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