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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23). 북악산, '숙정문'( 서울, 2006.5.12.) 본문

[♡ 나의 발자취 ♡]/▶山行

23). 북악산, '숙정문'( 서울, 2006.5.12.)

자유인ebo 2006. 6. 3. 16:41

 

 

북악산 숙정문

      숙정문을 비롯한 청와대 뒤 북악산 일원은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인`

      1.21 사태` 이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규제�다.

      역대대통령이 보좌진을 대동하고 등반하는 곳으로써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4대문 중 하나인 북대문인 숙정문과  북악산의 일부분이

      2006년 4월 1일 일반에게 공개되 선조의 숨결을 느끼고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의 이면을 완상(玩賞)할 수 있게�다.

 

 

     홍련사입구에서 숙정문까지 급경사길에는 나무계단으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되었다.

     계단이 끝나면서 숙정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숙정문(북대문)은 1396년(태조 5년) 동대문(흥인지문)과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등과

     함께 서울 4대문의 하나로 건축됐다. 그러나 문으로 구실을 하지는 않았다. 북문을 열어놓으면

     음기가 들어와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풍수설 때문이었다. 결국 현재의 상명대

     앞쪽에 홍지문을 내고 '북문'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태종 16년(1416)에는 기우절목(祈雨節目)을 만들어 가뭄이 심하면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았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남대문을 열게 하였다고 한다. 즉 가뭄이 심하면 먼저

     종묘·사직과 명산(名山)·대천(大川)에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남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어 놓았단다. 그리고 시장(市場)을 옮기고 보신각의 종을 치는 대신 쟁(錚)을 치게

     하였으며, 이는 북은 음(陰)이요, 남은 양(陽)인 까닭에 가물면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하는

     음양오행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예종 때의 기록에도 몹시 가물면 종로의 시장을 구리개

     (현 을지로 입구)로 옮기고, 남대문을 닫은 다음 북문, 즉 숙정문을 열게한 뒤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였다.

 

 

     숙정문과 북악산 일부분개방은 하루 네차례로 나누어 관람을 허용하고있으며 인솔자가 있어

     인솔자가 숙정문과 북악산의 역사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해준다. 위 에서 맨앞에선 사람

     이 문을 통과하기전 숙정문에 관한 설명을 하고있다.

 

     조선 초의 기록을 보면 풍수설과 음양설에 따라 숙정문을 닫아 두었거나 열어 놓기도 하였다.

     그 예로 태종 13년(1413) 6월에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이 풍수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이 되는

     창의문과 숙정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地脈)을 손상시킨다는 상서(上書)가 있자, 마침내 이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서울성곽위에서 성북동쪽으로 바라본 시가지모습, 아래에 큰 기와지붕이 보이는데 이 집이

     그 유명한 삼청각이라는 곳이다.

 

 

     원래 숙정문위에 루각은 없었다고 한다. 서울성을 보수복원하면서 루각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서울성곽위에서 본 숙정문의 옆 모습이다.

 

     조선 초의 기록을 보면 풍수설과 음양설에 따라 숙정문을 닫아 두었거나 열어 놓기도 하였다.

     그 예로 태종 13년(1413) 6월에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이 풍수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이 되는

     창의문과 숙정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地脈)을 손상시킨다는 상서(上書)가 있자, 마침내 이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 곳은 성안에서 밖을 관찰하거나 적을 향해 공격을 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서의 구조이다.

     오른쪽은 길다란 구멍인데 관찰하는 각도가 넓어 좌우를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작은 구멍은 멀리서 접근하는 적을 향하여 공격하는 곳이고 중앙에 있는 구멍은 성곽

     아래에 이미 접근한 적에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숙정문에서 촛대바위로 향하는 방문객들, 수십년동안 특정인만 이곳을 산책할 수 있었는데

     직접 걸어보면서 더 많은 지역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여기는 촛대바위 전망대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전망이 좋은 곳이었으나 이날은

     안개도 아닌 것이 시야가 너무나 흐려서 남산타워도 깨끗이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가지 경복궁의 모습이 히미하게 보인다.

 

 

     이곳이 '촛대바위' 아쉽게도 촛대바위는 밑에서 봐야하는데 머리만 봐야했다. 아래는 아직

     미개방구역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바위위에 비석같은 표시가 있는데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일본 강정기 때 일본놈들이 한민족의 기를 꺽기위해 쇠말뚝을 밖았던 곳이다. 지금

     은 쇠말뚝을 제거하고 이렇게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숙정문을 나와서 이곳 삼청각에 한 번 둘러보았다. 삼청각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조경도 비교적 잘 되어 있었고 규모도 생각보다 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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