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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7.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 본문

[♡ 자유와 평화 ♡]/가톨릭 基本敎理

7.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

자유인ebo 2011. 6. 24. 13:09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 

 

 

 

 

하느님이 보내 주신 구세주는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이 보내 주신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란 무슨 뜻인가?

  예수는 구세주란 뜻이요,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 즉 거룩한 기름으로 축성된 왕, 대사제, 예언자란 뜻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으로서, 인간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하느님으로 남아 계신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그분은 人性과 神性을 다 갖고 계시며, 죄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똑같은 조건을 가지신 분으로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를 죽음에 붙이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세주이시다.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성자)을 보내신 첫째 목적은 무엇인가?

  성자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어, 성삼위(聖三位)이신 하느님과의 친교로 이끄는 데 있다.

 

 

 1. 예수님이 사시던 땅

 

  예수님의 조상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아 왔다. 기원전 587년에는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수많은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여 유배생활을 반세기 동안이나 하였다. 기원전 539년,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팔레스티나 땅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그리스에 의해 재차 침략을 당하여 그 속국이 되었다가 연이어 에집트와 시리아의 속국의 신세로, 마침내 기원전 64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기원전 4년에는 로마가 대(大) 헤로데 왕의 아들들을 시켜 이스라엘을 네 등분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시던 시대의 유대아는 기원 후 26년부터 36년까지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 다스려졌다.

 

  이렇게 수탈과 침략의 역사를 살아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구해 줄 구세주를 기다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세에 의해 침략 당하고, 안으로는 양반계급으로부터 수탈을 당하던 우리 조선시대의 백성들이 미륵세계와 그들의 구원자 정도령을 기다렸던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2. 예수님의 탄생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백성의 비천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구세주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며, 구세주에 대한 기대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이 메시아(구세주)가 자기들을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시켜 줄 위대한 다윗의 후손이며, 따라서 그의 출생은 특별한 징조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때가 되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다(루가 1,30-33). 그러나 그리스도(구세주)는 일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셨다. 호구조사(戶口調査)를 위해 베들레헴에 갔던 마리아와 요셉은 "여관에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6-7). 이같은 비천한 출생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비참함에 처음부터 동참하심을 암시한다.

 

 

3. 성령에 의한 탄생

 

  성서는 요셉이라는 나자렛 사람과 약혼한 마리아가 하느님의 영을 받아 잉태했다고 전하고 있다. 마태 1,18-23절과 루가 1,26-45; 2,1-20절에서 우리는 예수의 탄생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영에 의한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알아듣기 힘든 하나의 신비로서 과학적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우리에게 이것이 사실임을 알려 준다.


 

4. 참 인간이신 예수

 

  예수님이 영에 의해 출생했다고 해서 그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 인간의 정신, 인간의 의지, 인간의 감정도 갖고 계셨다. 예수님은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이시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나약함, 목마름(요한 4,7)과 배고픔(요한 4,32)을 겪으셨고, 슬퍼함(요한 11,33), 불쌍히 여김(마태 15,32), 노여움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계셨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에서 그분의 인간성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분은 정신과 육체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인간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 인간 본성이 가장 고귀하게 되고 또 그분은 인간 생활의 완전한 모범이기 때문이다(마태 11,29). 당신의 인간성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5. 하느님이신 예수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이시면서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우리의 주님이시다. 이미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명백히 불리고 있다.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 보이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이시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시요 또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분이시다.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부른 신약성서의 대목은 많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하느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이를 살리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보여 주셨다. 하느님의 지혜가 예수님 안에 있었다. 예수님은 만물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역할을 이행하실 것이다. 이 지상의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에 모일 것이고, 사람의 아들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마태 25,31-46).

 


6. 하느님의 아들(성자)이신 예수

 

  예수님은 창조주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써 그분과 당신과의 관계를 계시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셨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셨다. 그러나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30). 아버지와 예수님의 본성은 같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는 영원한 사랑과 예지와 힘을 함께 갖고 계신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며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아버지를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낳으신 아들이시다. 예수님 홀로 당신의 영원한 아버지와 함께 신성을 완전히 소유하고 계신 하느님의 참 아들이시다.


 

7.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신 예수

 

  예수님은 사람이시고 또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아들로 존속하시고 또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때가 되어 인간 본성을 취하셨으며, 영원히 인간으로 존속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은 하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완전한 일치와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동정 마리아 몸에서 인간 본성을 받으시었고, 그 인간 본성을 하느님의 아들의 위격(位格)과 일치시키셨다. 바로 이것을 '강생(降生)의 신비'라고 한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로 변형되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하느님의 아들로 존속하시는 그분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지만, 신적 본질을 조금도 잃지 않으시고 인간의 본질을 완전히 취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위격은 하나이고, 그 위격은 인간적 위격이 아니라 신격(神格)이며, 성삼위의 한 위(位)이시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예수님 안에는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제 2위와는 다른 인간적 위격이 없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신비이다.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행위는 신적 자유의 행위이며 인간적 자유의 행위였다. 그분의 인간적 의지는 신적 의지에 의해서 위축되거나 말살되지 않았다. 인간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가장 거룩한 수난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의화(義化/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의 공로를 세우셨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16). 강생의 신비 전체 즉, 그리스도교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이 신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구원하게 하셨다. 창조의 목적 전체가 피조물을 성삼위(聖三位)와의 친교로 이끌어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