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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뚝깔(수락산, 2007. 8. 29.) 본문

[♡ 나의 발자취 ♡]/▶풀꽃 나무꽃

뚝깔(수락산, 2007. 8. 29.)

자유인ebo 2007. 8. 31. 15:56

 

뚝깔(수락산, 2007. 8. 29.)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다른 이름 : 뚜깔


들과 산의 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키는 1m정도이며, 흰색의 짧은 털이 많고, 잎은 마주나며 3~15cm, 잎은 짙은 녹색이고 잎 뒷면은 흰빛이 돌며, 잎자루가 있으나 줄기 윗부분의 잎에는 없다.

꽃은 7∼8월에 흰꽃이 가지와 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리고, 열매는 거꾸로된 달걀 모양이며, 어린잎은 식용으로 한다.

 

 

식민지(植民地), 20년대(年代) 춘궁(春窮)

                                                         박두진

 

삼동을 벗어나면 춘궁이었다.
길고도 아득한 굶주림이 기다렸다.
하늘도 햇볕도 허기로 타오르고
흙덩어리 팍팍한 황토의 목메임.
마을은 기진한 채
죽은 듯 늘어져 잠잠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바라볼 것도 기다릴 것도 없었다.
아홉 굽이 창자마다 쪼로록거리는 울음
어질뜨려 노오랗게 하늘과 땅이 핑핑 돌고
한낮에 오슬오슬 소름 돋치는 신열
아무데나 주저앉아 이명소리 견디고
이마에는 진땀,
정신이 돌면 또 한 번씩
허리띠 끈을 졸라맸다.

 

 

 

띄엄띄엄한 20호 미만의 고장치기
영세 소작의 극빈자
분노도 원망도
체념조차도 사치로워 죽지 못해서 사는 채로
그냥 살고 그냥 굶으며 시들어 갔다.

 

특권 지주 수탈의 원흉 동양척식회사
군림하는 그 이민
백색 흡혈귀에게
소작료로 비료값으로 장리쌀로 빼앗기고
키 까불러 알곡으로만 몇 곱절씩 빼앗기고
고리채로 또 되묶이고 덜미를 잡혀 졸리우는
피와 땀의 무한 농노 죽어지지도 않았다.

 

석복이네도 그랬다.
길영이네도 그랬다.
재돌이네도 동방삭이네도
쇠돌이네도 그랬다.

 

 

조당수 묽은 죽에 얼굴 어려 비치고
비료용의 콩깨묵 죽, 스래기 죽,
그것마저 바닥이 나면
씨오쟁이를 털었다.

 

어린아기 젖이 안 나 지쳐 잠들고
영양실조 기갈증
성인들은 부황이 들어
누렇게 부어서 비틀댔다.

 

어머님, 어머님,
반듯하고 너른 이마 둥글고 큰 눈
그때 우리 어머님은 수심에 찬 얼굴
단정하게 무릎 위에 바느질감 드시고
긴긴 해를 말이 없이 삯바느질만 하셨다.

 

누비질로는 골의 으뜸
이따금씩 찾아오는
누비옷을 맡으면
이불 한 채에 얼마
바지 저고리에 얼마
좁쌀 사고
월사금 내고
제사상도 차리셨다.
  

 

하루 한 끼 죽, 혹은 두 끼 죽,
다른 식구 거둬 주고 스스로는 늘 줄여
눈 침침하고 손 떨리고
현기증이 나면,
나 몰래 식구 몰래
가만가만 걸어 나가 장독대로 가서
맨간장물
물에 타서 훌훌 마시셨다.

 

아으 그래도 사람들은 죽지 않으면 살았다.
풀이 나면 풀을, 잎이 나면
잎을 뜯어
들, 산, 아무데나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다.

 

질경이, 쑥, 명아주, 비듬,
아욱, 시금치, 쑥갓, 부루,
산에서는 고사리, 취, 뚝깔, 원추리,
먹는 풀은 무엇에고
좁쌀 한 줌 넣고
시퍼렇게 죽을 쑤어 끼니를 때웠다.
 

 

 

왜 가난한지
왜 굶는지
누가 못살게 하는지
일인들이 무엇인지
왜 그들이 지주로서 착취해 가고
왜 우리는 소작인으로서 착취를 당하는지
팔자소관 운명의 탓
살다가 그대로 죽어가는
20년대의 식민지,
벌판 마을 고장치기는
외롭고 또 아득했다.

 

눈물과 땀
피와 살점
골수까지 빨아 가던
제국주의 아귀

 

기름진 땅 알곡
좋은 것은 빼앗기고 나쁜 것마저도 잃어
아무것도 손에 없이 시름시름 죽어 간
잡혀 가고 쫓겨 가고
굶주려서 죽어 간,
조선 팔도 삼천만
무한 농노 너무 착한 우리들의 넋.

 

<포옹무한(抱擁無限), 범조사, 1981>

 

 

뚝깔  꽃과 열매

 

 

- 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