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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제18권 유딧기 제1장 본문

[♡ 성경 쓰고 읽기]/☞ ----[역사서]

구약 제18권 유딧기 제1장

자유인ebo 2010. 2. 5. 08:54
 
 
 

구약성경 제18권 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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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은 어떤 책인가요?

 

 유딧이란 성서이름은?

유딧은 제2경전 중에서 토비트 다음으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아시리아군에게 포위당한 요새 베툴리아를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주인공 유딧의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누가 썼나요?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시하고 성전과 연관된 각종 희생제사와 봉헌물을 강조하며, 기도와 단식 등의 제사를 올리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마카베오 시대에 시행되었던 바리사이즘을 연상케 됩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팔레스티나에서 펼쳐지고 그곳의 지리가 다른 곳의 지리보다 정확한 것을 보면, 팔레스티나에 사는 바리사이가 썼을 것으로 보여요.

 

 언제 썼나요?

유딧서 안에는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어요. 화환이나 올리브로 만든 관을 쓰는가 하면(3,7;15,13), 식사할 때에도 비스듬히 기대서 먹어요(12,15). 왕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왕에게 예배드리게 하구요(3,8).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대사제가 정치적·군사적인 권력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4,6), 예루살렘 원로들이 다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4,6.8; 11.14)에서 마카베오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와 그 지역에 대한 예루살렘의 태도가 우호적이며(4,4.6), 사마리아 일대에 우상숭배가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단언되는 것(8,18-20)을 보면, 기원전 107년 그리짐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마리아 지역을 유다의 통치권 아래에 편입시킨 요한 히르카누스 1세(기원전 135-104) 이후에 쓰여졌을 거에요. 하지만 알렉산더 얀네우스(기원전 103-78) 시절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학살된 사건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보여요. 더군다나 사두가이파나 에세네파에 반대하는 듯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따라서 바리사이즘이 형성되던 초기 시절에 해당되는 요한 히르카누스 시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으로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비상한 노력과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지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종교 박해에 맞서 싸운 결과로 생겨난 하스모니안 왕조에 있어서,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했습니다. 강대국 안에서 벌어진 패권다툼을 잘 이용해서 유다 왕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한편, 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될 시대적인 요청이 절박했던 것이죠. 따라서 이방인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될 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베툴리아 주민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신상의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던 유딧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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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기 제1장

 
네부카드네자르가 메디아 임금 아르팍삿을 쳐부수다 
  1    대성읍 니네베에서 아시리아인들을 다스리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 제십이년의 일이다. 그때에

       아르팍삿은 엑바타나에서 메디아인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2    그가 엑바타나 둘레에 너비가 세 페키스고 길이가 여섯 페키스로 다듬은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높이는 일흔 페키스고 너비는 쉰 페키스로 하였다. 
  3    그리고 성문마다 예순 페키스 너비로 기초를 놓고 높이가 백 페키스 되는 탑을 세웠다. 
  4    성문들은 자기의 부대들이 한꺼번에 나가고 보병들이 거기에서 정렬할 수 있도록, 높이가 일흔

       페키스고 너비가 마흔 페키스가 되게 만들었다. 
  5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아르팍삿 임금과 대평야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것은 라가우 경계

       안에 있는 평야였다. 
  6    그리하여 산악 지방에 사는 모든 주민,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와 히다스페스 강 가, 그리고 엘람

       인들의 임금 아르욕에게 소속된 평야에 사는 모든 주민이 아르팍삿에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민족들이 켈레웃인들과 싸우려고 집결하였다. 
  7    그러자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사절들을 파견하였다. 페르시아의 모든 주민과

       서쪽 지방의 모든 주민, 곧 킬리키아, 다마스쿠스, 레바논, 안티레바논의 주민들, 해안 지방의 모

       든 주민, 
  8    카르멜, 길앗, 갈릴래아 고지대, 이즈르엘 대평야의 민족들, 
  9    사마리아와 그곳에 딸린 성읍들,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요르단 건너편 지역, 바타네, 켈루스, 카

       데스, ‘이집트 강’, 타흐판헤스, 라메세스, 온 고센 땅의 모든 주민, 
 10   타니스와 멤피스 너머의 주민들에게까지, 그리고 에티오피아 경계선에 이르는 이집트의 모든 주

       민에게 사절들을 파견하였다. 
 11   그러나 이 지방의 주민들은 모두 아시리아인들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편으로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네부카드네자르를 한낱 필부로 여겨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들은 사절들을 망신스럽게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2   네부카드네자르는 이 온 지방에 몹시 화를 내었다. 그러면서 킬리키아와 다마스쿠스와 시리아의

       온 영토에 보복을 하고, 또 모압 땅의 모든 주민, 암몬 자손들, 온 유다 주민, 두 바다의 경계에 이

       르는 이집트의 모든 주민을 자기 칼로 처단하겠다고, 자기의 왕좌와 왕국을 걸어 맹세하였다. 
 13   그리하여 네부카드네자르는 제십칠년에 자기 군대와 함께 전열을 갖추고 아르팍삿 임금과 맞섰

       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는 아르팍삿의 온 군대와 그 온 기병대와 병거대를 패주시

       켰다. 
 14   그리하여 네부카드네자르는 아르팍삿의 성읍들을 차지하고, 엑바타나까지 이르러 그곳의 탑들

       을 점령하고 시장들을 약탈하여, 엑바타나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어 버렸다. 
 15   또 아르팍삿을 라가우 산악 지방에서 사로잡고서는 자기 창으로 내리 찔러, 그를 완전히 파멸시

       켜 버렸다. 
 16   그러고 나서 자기의 연합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귀국하였다. 그것은 굉장히 많은 전사들의 무리

       였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자기 군대와 함께 백스무 날 동안 쉬며 잔치를 벌였다. 


* 2010.02.05.금요일. 자유인e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