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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의 쉼터

37. 그리스도인의 죽음 본문

[♡ 자유와 평화 ♡]/가톨릭 基本敎理

37. 그리스도인의 죽음

자유인ebo 2011. 5. 22. 14:00
 
 
 

그리스도인의 죽음

       

          

 

◈  그리스도 신자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혼과 육신이 서로 갈리어 육신은 썩을지라도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 나아감이며,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1. 죽음의 의미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죽음의 의미가 여러 가지이다. 인간의 죽음은 자연적이다. 우리 생명은 시간으로 측정하고 시간 안에 우리는 변한다. 늙어서 죽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죽음은 죄의 벌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영혼은 육체에게 생명을 주도록 창조된 인간의 생명 원리이다. 육체가 죽은 후에도 이 생명의 원리는 계속 생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육체가 분해된 후에라도 계속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직접 뵈옵고, 하느님의 생활에 참여한다. 하지만 '육체를 떠나 있는 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는 육신의 부활을 기다린다.


  구약성서에서는 죽음과 죄악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였지만(창세 2,16-17), 초기에는 인간이 지상생활이 끝난 후에 개인 생명이 계속된다는 인식이 분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으로써 종교활동이 끝난다고 생각하였다.


  묵시문학(다니 12,1-14)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싹 텄고, 지혜문학은 인간의 불멸에 관한 좀더 밝은 전망을 제시하였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 3,1-4).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죽음에 관한 사색보다 모든 백성의 생활을 완성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초기에는 개인의 죽음에 관한 집념이 크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은 자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죽음의 신비에 관하여 진지하게 숙고하게 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도적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나(루가 23,43),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한다"(2고린 5,8)는 바울로의 말씀은 죽음을 숙고하는 지침이다. 그래서 마지막 사건들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서서히 이루어졌다. 죽음 직후와 마지막 부활 전에 있을 개인의 상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도 후대에 와서야 정식으로 규정하였다.

 

 

2. 사심판 (私審判)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앞에서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  심판은 몇가지 있는가?
   사심판과 공심판(公審判), 두 가지가 있다.

 

◈  사심판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을 때 육신을 떠난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각자 받는 심판을 말한다.
 

  사람은 죽은 후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 교회는 은총 중에 죽어, 더 이상 정화가 필요없는 사람은 죽자마자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은총상태에서 죽었으나 정화가 필요한 이는 그 정화가 끝난 후에 하늘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대죄 중에 죽은 사람은 죽자마자 끝없는 벌을 받기 시작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집회 15,14) 자유롭고 책임을 지게 만드셨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고 인간의 모든 행동을 아신다(집회 15,18-19). 그리고 이 생명이 끝나면 각 사람은 주님께 보고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2고린 5,10).


  죽은 후에 개개인이 받는 심판인 사심판은 분명히 규정된 가르침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개개인이 죽자마자 상이나 벌이 시작된다고 교리 안에 함축되어 있다(필립 1,21-23). 사람이 쌓아 올린 공적 전체는 죽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야 개인과 하느님, 개인과 창조 전체의 관계가 나타난다.

 

 

3. 연 옥 (煉 獄)


◈ 연옥이란 어떤 곳인가?
   연옥이란 세상에서 정화되지 못한 영혼들이 하느님을 뵙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전까지 단련받는 곳이다.
 

  어떤 이는 은총 중에 하느님과 우정을 맺은 상태에서 죽었으나 소죄나 불완전을 가지고 있거나, 죄에 대한 보속을 다하지 않은 수가 있다. 이러한 영혼들은 하느님을 뵈러 가는 데에 방해되는 마지막 장애를 연옥에서 씻는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지상에 남아 있는 신자들은 미사, 기도, 자선과 교회의 관습대로 신자들이 다른 신자에게 하는 여러 선업으로써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그 기간이 단축되도록 중재할 수 있다.


  '연옥'이란 말이 성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옥에 관한 믿음은 오래 되고,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성서의 분명한 가르침에 뿌리박고 있다. 연옥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 성덕이 필요하고, 용서받은 죄에 대한 현세적 벌이 있다는 교리에 근거한다(2마카 12,45). 교부들의 저서에는 연옥의 존재뿐 아니라 기도 특히 미사로써 죽은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교회헌장 50).


  연옥 고통에 대하여 교회가 분명히 규정한 것은 없다. 연옥의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과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그제야 하느님의 무한하신 선함을 전보다 더 깊이 깨닫고, 잠시라도 자기가 만든 장애 때문에 하느님을 직접 뵙는 복을 누리지 못해서 고통을 당한다. 영혼은 고통을 당하지만 평화를 느낀다. 이제 구원은 아주 확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 임 보 (limbus)
 

  13세기부터 특수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장소나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서 '임보'란 말을 사용했다.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에게는 자기 죄가 없다. 그러나 세례성사로써 구원 은총을 받지 못하였고, 다른 방법으로 주어지는 은총에 자유로운 응답을 한 것도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따르는 대부분의 신학자는, 그 유아들이 은총 없이 죽어서 하느님을 뵐 수 없지만, 하느님은 그들에게 자연적 행복을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임보의 존재나 성격에 대하여 교회가 공식선언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5. 지 옥
 

  교회는 슬프고 한탄스러운 영원한 죽음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모든 세기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경고하였다. 지옥과 악의 신비 사이와 지옥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관련이 있다.


  지옥에 대한 참된 이해가 구세사의 초기단계에는 없었다. '셰올'(Sheol·저승 또는 지옥)은 선인과 악인이 죽은 후에 어둡고 불만스러운 실존 형태를 함께 견디면서 사는 장소라고 생각하였다. 셰올은 악인이 벌받는 장소일 것이란 계시가 서서히 주어졌다. 그 계시로 말미암아 인간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더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지옥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지옥에 대해 당신이 상상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삶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마태 25,46). 이것이 처음부터 교회의 가르침에 포함되었다.


  지옥벌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느님 안에서만 인간은 자신이 갈망하는 생명을 가질 수 있는데, 지옥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한다. 저주받은 자들은 성서가 언급하는 "영원한 불"(마태 25,41)로 인한 감관(感官)의 고통을 당한다. 교회는 그 불의 본성이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았으나, 저주받은 자의 벌은 손실일 뿐 아니라 끝없는 후회와 보상받지 못하는 자기 증오의 고통이 있다.


  지옥에 가도록 하느님이 예정한 사람은 없다. 사람이 고의로 또한 알면서 중대한 죄를 짓고 끝까지 그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간다.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삶을 누리도록 창조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돌아서서 하느님의 생명을 배반했다. 하느님이 가혹하시기에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의가 지옥을 만들어 낸 것이다.

 

 

6.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스도 신자는 죽음을 예수님께 다가감이요 생명에로 돌아감이라고 본다. 은총 중에 죽는 이는 예수님의 현존 안에 있고, 삼위일체에 대한 지복직관을 갖는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신앙과 사랑 안에 죽는 이는 생명에로 들어간다(교회헌장 48). 그들은 그리스도, 그의 모친, 성인들과 우정을 맺고 영광을 누리면서 하느님을 본 모상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교회헌장 49).

 

 

7. 성인의 통공(通功)
 

  교회는 지상에서 신앙 안에 사는 이들의 가족일 뿐 아니라 성인들의 집단이다. 여기서 성인이란 교회의 공식 선언에 의해 공경을 받는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고이 잠든 이들을 말하며,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도 그분들과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면서 언제나 결합되어 있고, 그들의 새 생활을 통하여 우리도 하느님께 다가간다(교회헌장 49).


  하지만 축복받은 그들의 행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부활, 즉 육신의 부활을 기다리고 인간의 한 부분인 육체가 영원한 삶의 기쁨에 참여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뵙는 행복과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을 누릴 뿐 아니라, 그들은 아직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교회 건설에 이바지한다. (교회헌장 49)